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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두자리 숫자 (니 봐봐요
    카테고리 없음 2020. 1. 31. 16:12

    거실에 있던 어머니가 펀치 사용법에 대해 물었다. 어머니는 이전까지 15년 이상 화장품 방문 판매업을 해왔다. 이후 1년간 학원에 다니고 자격증 준비를 하면 좋은 점수로 합격하고 재취업에 성공한 전셌다.설거지가 끝난 뒤(남) 엄마는 거실에 앉았다. 매일 밤 돋보기 안경을 코에 걸고 구부정한 자세로 컴퓨터를 마주했다. 타타타타타타타. 독수리 타법으로 문서를 작성하고 인쇄한 뒤 펀치를 이용해 파 하나를 만들었다. 그러다가 세탁기 알람이 울리자 빨래를 널고 다시 파하나 만들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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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장은 50대 중반이었다. 두 아이가 대학생이라니까 그만할 줄 알았다. 20년 이상 한 회사에 몸을 담은 사람, 돈에 직결되는 결과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괜찮아의 이익이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구분이 확실했다. 그 구분에 따른 틈틈이 분배도. 언젠가 들은 전화로 한 건물에 카페를 내려는 것 같았다. 그 카페는 입점 조건이 까다로웠다. 그 후 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연히 월급명세서를 본 뒤라 연봉이 높아도 감정이겠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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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주위에는 작가 언니들이 여럿 있었다. 메인 작가 언니는 30대 후반, 서브 작가 두 누나는 30대 초반, 막내의 작가들은 20대 중반 나도 레욧다. 점심 무렵에는 방송작가가 가진 향후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 부산이라는 지방에서 서울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결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쁘지 않았다.​ 한일은 30대 초반의 서브 작가 언니 두명과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어쩌다 안 좋아졌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어머니와 함께 들은 강의 이야기를 했다. 유명강사의,자식은엄마를통해꿈을배운다,라는제목.강의를떠올리면,낳는순간부터아이는엄마에게혼돈하다. 아무튼 엄마와 자식의 관계, 엄마의 꿈, 아이의 꿈. 그런 얘기를 한 것 같아. 그때 갑자기 한명이 눈물을 시작했고 또 한명도 함께 울었다. 나쁘지는 않아, 울지는 않았지만 우리 집뿐이 아니야, 나쁘지 않아, 라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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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받고 싶은 팀장님을 만났다. 40대 초반이었다. 꾀를 부리지 않고 1을 하는 사람이었다. 지혜를 쓰는 것이 정공법인지, 책략을 부리지 않는 것이 정공법인지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만. ('정공 법'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며칠 전 한 사람과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된)​ 목요일 1오후 3,4시경이었을까. 갑자기 팀장님이 앞으로 뭘 먹고 나, 라고 글을 올렸다. 회사의 수익을 촉진하면서도 팀장이 승진에서 제외된 시기였다. 공공기관은 안정이 보장될 줄 알았는데. 나는 조용히, 언제 이런 감정을 하지 않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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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인상이 차가운 차장을 만났다. 내 옆자리였어. 칸막이가 쳐져 있었지만 통화 얘기는 숨길 수 없었다. 통화할 때 마치 선생님 같았다. 숙제를 왜 지금 해야 하는지, 학원을 왜 가야 하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행사 날짜가 임박해 밤늦게 일하는 날이 많아질 때도 통화 이야기는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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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기 이이에요 당신들 중 40대 초반의 아이 두 어머니가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쁘지 않으면 엄마라는 존재가 되면 그 세계에 갇힌다고 한다. 그것이 무서워서 1을 시작했다. 육아와 업무가 양립할 수 없다고 소견한 나에게 두 사람은 조금 큰 충격이었다. 힘들겠지만 힘들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어.행사가 끝나고 반갑지 않다고 소감을 한마디씩 하는데 차장이 눈물을 보였다. 주임선생님도 눈물을 보였다. 귀추가 달라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겠지만 언젠가 나쁘지 않아도 저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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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3년 동안 해왔던 유사의 대등한 직종에 벗어 나 새 직종을 선택하게 됐다. 선택에 있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기준은 기뻐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 잘하는 것 보다 하기 싫어도 어느 순간 몰입하는 것. 만들고,과잉하면남의것이되는게아니라,내것이되는것,과인이물어봐도꾸준히할수있는것.문장을쓰는것도그랬다. 좋다기보다는, 잘한다기보다는, 하기 싫어도, 어느 순간 몰입이 되는, 내 것이 되고, 꾸준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어느 정도의 연수가 쌓일 때까지는 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만. 내 감정대로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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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취업 후 문득 어머니가 상당하다는 소견이 들었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나쁘지 않았는지. 그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할 때 나쁘지는 않은 제멋대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가르치려 했던 게 아닌가. 넌지시 어머니의 직업을 그 정세를 무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전히 나쁘지 않은 엄마의 두 자리 숫자에 다소 음침한 뜻을 알 수 없다.


    글과 사진| 바커(@bakein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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